[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이윤을 쫓는 물질중심주의적 사고가 익숙한 사람이 생명이란 가치를 중시하는 종합병원의 사장이 된다. 표면적으론 전자가 악인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사람이 더 큰 대중의 마음을 획득하더라. 어떤 점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나.

JTBC 드라마 ‘라이프’(연출 홍종찬‧임현욱, 대본 이수연)에서 삼국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부임한 구승효(조승우)는 신기할 정도로 현실과 이상이 조화가 잘 되어 있는 인물이다. 무슨 의미냐면, 으레 권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는, 습득하고 수용하는 힘이 매우 탄력적인 인물로, 매순간 이해하고 배우고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의 삶의 질을 높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노력하며 살아온 것치고는 사람과 삶을 대하는 ‘놀랍도록’ 진정성 어린 태도라 할까. 즉, 어떤 이들은 구승효를 화정그룹의 숨겨둔 아들입네 어쩌네 하며 소문을 만들지만, 그야말로 어떤 뒷배경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화정그룹 내에서 최연소CEO의 자리까지 오른, 성공한 사람 중의 성공한 사람이란 말씀.

우리는 흔히, 독한 과정을 거쳐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라이프’에서 그려지는 구승효의 삶의 태도는 이러한 시각들을 철저히 깨부순다. 첫 번째로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온 구승효에게 바로 옆의 사람들이란 밟고 올라가야 할 존재들 혹은 자신의 성과를 위한 부수적인 존재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방을 쓰게 하며 비서처럼 함께 하는 강경아(엄혜란) 팀장과의 관계를 보면 상당히 인간적이다. 우선 강팀장이 구승효 사장을 대하는 모습에 어떤 엄격함이나 긴장감이 전혀 서려 있지 않다. 사장님이라면서 편하고 자유롭게 대하는 강경아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구승효가 그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시선이 있어서는, 반박하는 에피소드라 보기 좀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구승효가 송탄 부지를 매입하는 장면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구승효는 그룹 회장의 명으로 환경부장관의 부모가 송탄에 소유하고 있는 땅을 사들이기 위해 직접 움직여 결국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오는데, 그 과정이 가히 주목할 만하다.

구승효는 땅주인의 집에 들어서며, 세밀한 눈썰미로 자식들의 손길이 별로 닿지 않는, 외로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자식들 사랑하는 마음은 큰, 보통의 우리네 부모와 다르지 않은 사정을 관찰해낸다. 그는 애틋한 마음 반, 환심을 사고자 하는 마음 반으로 지위를 드러내는 옷을 벗고선 땅주인이 힘겹게 홀로 하던 작업을 손수 마무리해놓는다. 이 뿐이던가. 간식을 던져 주며, 자신을 보고 무섭게 짖던 개의 마음까지 얻어낸다.

이 세심한 씀씀이는 땅주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적으로 작용한다. 구승효에게 그간 땅을 팔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 화전민이었던 지난날의 과거까지 털어놓을 정도로, 그를 신뢰하게끔 만든 것이다. 사실 이렇게만 끝났으면 구승효의 지략적인 부분만 강조되는, 그러니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모만 부각되는 에피소드이겠으나,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는 화전민에 관한 이야기를 검색한다. 분명히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땅주인을 앞에 둔 그의 마음만큼은 자신의 부모를 대하듯 오롯한 진심이었던 게다.

동물마저 마음을 주는데 우리들이라고 어쩔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러하니 처음엔 실질적인 것을 쫓는 악인으로 보았는데 이젠 악인 같지가 않다. 오히려 구승효란 존재가 드라마 속 어떤 인물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져 그의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설득이 될 지경이다. 모든 순간, 모든 만남을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과정으로 맞닥뜨리는, 진정성 어린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로, 구승효가 드라마 내외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낸, 얻고 있는 방법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씨그널 엔터테인먼트그룹, AM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