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작가들, 특히 인간 내면이 악함,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들에게 연쇄살인사건은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다. ‘이리와 안아줘’와 ‘라이프 온 마스’, ‘검법남녀’까지, 형사와 검사의 옷을 입은 주인공들은 연쇄살인범과, 그가 남긴 악몽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니까.

왜 연쇄살인사건일까. 드라마에서 악인으로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덕성은 철저히 떨어지는 반면 범죄를 저지르고 처리하는 과정이나 그러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 자기 방어나 책임 회피 등을 위한 지적 능력은 굉장히 뛰어난 존재다. 그들이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수사에 난항마저 던져줄 수 있는 까닭이다.

사실 당연한 설정이다. 마음에 문제가 없고 영악하지도 않으면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가 없다. 우선 살인이 여러 번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절대 우발적일 수 없는, 계획적 범죄란 의미고, 형사나 검사가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여전히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있다는 건 그의 범죄가 똑똑하게 이루어졌단 소리다. 뛰어난 이기심과 지적 능력이 받혀주지 않았다면 발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쫓는 주인공, 형사나 검사가 지적 능력에서 악인에게 밀리는 건 아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범인 못지않은 소시오패스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한 가지 중요한 차이, 즉, 선한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 하나가 살인범과 이들을 서로 다른 길에 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범인의 치밀한 사악함을 쫓는 데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여 주인공과 악인 사이에는 매순간 팽팽한 접전이 벌어진다.

이 간극에서 오는 흥미진진함이 상당하니, 범죄나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가 끊임없이 연쇄살인사건을 불러들일 법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다는 아니리라. 최근 방영된 ‘검법남녀’에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우성 연쇄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 30년 만에 범인이 다시 살인을 시작하면서 미제로 남아 있던 사건은 해결될 빌미를 얻는다. 각 분야에 있어 최고라 할 만한 전문가들에다가 진일보한 과학기술까지 힘을 보태고 있어,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짙은 어둠을 드리웠던 미제 사건은 드라마에서나마 그 진실이 드러날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드라마에서나마’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혀 법의 심판을 받고 무고한 죽음들이 멈춰지길 바라는 마음, 작가들에게 인기 많은 소재라 생각될 만큼 드라마 속에서 지속적으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일 테다. 아니, 핵심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풀지 못한 피해자들의 한과 유가족들의 억울한 절망감, 당시의 수사관들이 가져야 했던 잡지 못했다는, 멈추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자책감에 대한 최선의 위로이자, 절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무언의 다짐이 담긴 최선의 반응이라 할까.

희대의 악인은 난세의 영웅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마련이다. 어떤 강력한 사회적 조치도 그의 악행을 제어하거나 막을 수 없어 보통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작은 생각과 마음들이 모여 우리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인간미나 도덕성 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를 분명히 인지하여, 단순한 재미만을 위해 소재로 취했다 해도 훼손된 도덕의식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작가와 그의 드라마에게 주어진 책임감이다.

[티브이데일리 윤지혜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출처=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