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그 순간 각계 각층 다른 사람으로 변모해 감정을 당겨쓰는 일. 그렇기에 배우에게 있어 ‘전성기’라는 단어는 시공간을 구획 짓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카메라 앞에서 매 순간마다 다른 얼굴로 변신하며, 새로운 연기의 역사를 다시금 써 내려가는 산 증인이 있다. 무려 데뷔 56년차인, 1941년생의 베테랑 배우 나문희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제1회 '더 서울어워즈'가 열린 가운데, 나문희는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로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아이 캔 스피크’ 속 나문희는 민원을 숱하게 넣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1호 할머니 옥분 역을 맡았다. 극중 공무원 이제훈과 호흡을 맞추며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 그는, 영화적 연출과 메시지의 품격을 증폭시키는 혁혁한 공로자다.

이날 나문희는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 배우들을 굽어보는 원로가 아닌, 매 순간 뜨겁게 연기하는 ‘현역’으로서의 수상소감을 전했다. 자신의 평생 업무인 연기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잘 해냈기에 떳떳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어우러지며 오랜 세월 배우로 일해온 사람의 경험치는 과연 생생하고도 겸손했다.

배우는 대개 영화의 꽃이라 불린다. 하지만 나문희는 시종 자신을 낮추길 주저하지 않았다. “‘아이 캔 스피크’ 하면서 할머니로서 폐를 많이 끼쳤다. 그런데 제작사 측에서 아주 작은 역도 다 오디션을 마련해줘서 좋은 환경이었다. 카메라감독님도 리얼한 연기를 하라며 잘해주셨다”라며 공로를 함께 일한 스태프들에게 돌린 것.

특히 나문희는 영화 이면의 메시지를 강조하길 서슴지 않았다. 극중 중요한 핵심 플롯인 위안부 문제였다. “우리 위안부 선생님들이 애쓴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나라를 위해, 영화를 위해 한 번 해보겠다고 결심했다”는 것. 이는 어느 배우가 자신의 연기에 도취하기보다 참여한 영화와 메시지, 스태프들, 관객들을 한 몸으로 여기기에 가능한 언사였다.

마지막 한 마디는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이 빛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이기도 했다. “77살 먹은 할머니가 상을 탔으니 (후배들은) 희망이 길다. 여든살까지도 상 받으세요”.

이날 나문희는 괜찮은 국민, 시민,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간단한 도리를 역설했다. 나이에 무관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기. 직장인들도 주부들도 청소년들도 절절히 깨닫는 삶의 소명. 그들 덕분에 대한민국이 크고 작은 갖은 위기 속에서 올곧게 서 있는 것 아닐까.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