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김예나 기자] 배우 조성하는 중후한 중년의 멋이 느껴지는 배우였다. 삶에 자연스레 녹아든 그의 여유로움이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만들었다.
조성하는 지난 12일 종영한 케이블TV tvN 금토드라마 ‘THE K2’(극본 장혁린·연출 곽정환, 이하 ‘더 케이투’)에서 무소속 대권후보 장세준을 연기했다. 야망 때문에 딸 고안나(윤아)를 외면하고, 아내 최유진(송윤아)과 비즈니스적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세상 비열한 인물을 그려냈다.
‘더 케이투’는 전반적으로 극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심각한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배우 간의 좋은 호흡을 자랑하고 촬영 현장이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성하 역시 이에 동의하며 “출연 배우들 모두 유쾌한 분들이다. 심성이 하나같이 밝은 기운을 지녔고,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누구 하나 자기 먼저 찍어달라는 사람 없었다. 자기 순번대로 찍어주면 찍어주는 대로, 촬영이 아닐 때는 다른 동료들과 얘기했다. 3개월 밖에 안 되는 짧다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모든 배우가 끝나고 너무 아쉬워했다”고 회상했다.
그간 따뜻하고 친근한 캐릭터로서 인간미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던 조성하에게 이번 작품 속 악역 변신은 단연 색다른 인상을 자아냈다. “배우에게는 착한 역이든 나쁜 역이든 똑같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조성하에게 ‘더 케이투’는 배우로서 새로운 미션에 임하는 느낌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품 속 장세준이라는 인물이 표현하기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기 때문. 조성하는 “매회 준비할 때마다 새로운 숙제하는 기분으로 연기에 임했다. 1회 때 밀실 연기도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연기였고, 방송 시간대에 맞춰서 수위 조절하는 것도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더 임팩트를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가 언급한 1회 밀실 장면은 단연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조성하는 보디가드 액션 장르물의 새 탄생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 퍼레이드가 펼쳐졌던 ‘더 케이투’ 첫 회에서 수위 높은 베드신 장면을 그려내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해당 장면을 위해 4주 만에 6kg의 체중 감량했다는 조성하는 “처음에 제작진이 살을 좀 뺐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는 갑자기 살을 뺀다고 얼마나 빼겠나 싶었지만 장세준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생각 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 처음 만난 내연녀 역할의 여배우와 만남 역시 생생하게 밝혔다. 그는 “사실 신체적 스킨십이 있는 장면이다 보니 배우들이 예민해지는 날이다. 특히 저랑 25년 차이가 나는 여배우에게는 결례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여배우 위주로 맞췄다. 무엇보다 여배우와 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동선부터 제스처까지 모두 맞춰서 완성시켰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하나의 앙상블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성하는 매회 자신이 등장하는 씬에 대한 막강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특별히 대사 분량만 A4용지 20장에 달하는 청춘 콘서트 장면은 그의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숙제에 해당했다. 조성하는 “대사가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다른 배우들이 올려놓은 시청률을 그 시간만큼은 제가 책임져야 하지 않나. 만약 제가 나온 장면이 지루해져 버리면 채널이 돌아갈 수도 있는 문제니까 전체적인 완급조절을 하면서 장면을 어떻게 디자인을 하느냐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인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분석 덕분에 그가 그려낸 장세준은 드라마에서 단연 입체적인 캐릭터로 부각됐다. 조성하는 “장세준은 최유진에게도 안나에게도 끝까지 100% 드러내지 않고 항상 뭔가를 깔아두고 행동했다. 보통 보면 진짜 고수들은 물결이 잔잔하다. 깊이 들어갈 때 물길이 수천길이 나오겠지만 실상 수면은 잔잔하다. 오래된 정치인들만 봐도 감정변화 없이 늘 똑같지 않나. 저 역시 어떻게 하면 장세준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큰 기복 없이 최대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조성하는 뉴스나 정치인들이 출연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참고하며 그들의 인물 특성이나 이미지를 연구하고 참고했다. 연설법이나 평소 말투뿐만 아니라 검찰청 취조실에서 보여준 바둑 두는 설정이나 오히려 자신이 집주인 행세하는 상황들까지도 현실적으로 표현했고, 이는 요즘처럼 뒤숭숭한 시국 가운데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안기기도 했다.
그가 이토록 끊임없이 캐릭터 연구와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악역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가진 정당성이 분명하다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그 행동에 전혀 정당성이 없다면 캐릭터가 이해도 가지 않을뿐더러 조성하 스스로도 연기함에 있어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조성하는 “캐릭터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얼마만큼 상식선에서 출발할 것인가를 정해둔다. 그러다 보면 캐릭터가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되고 궁금증이 들게 된다. 그런 것들이 자꾸 생기면서 캐릭터의 정당성이 생기고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해 진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성하가 ‘더 케이투’에 끌렸던 점 역시도 드라마가 가진 개연성과 캐릭터들이 지닌 힘에 있었다. 하지만 극 초반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더 케이투’가 후반부로 갈수록 부족한 개연성이 발목을 잡으며 드라마의 힘이 빠진 것이 사실. 이를 두고 조성하는 “작가 선생님의 생각이 있으셨겠지만 저 역시 일반 시청자들이 가졌던 기대치와 드라마가 다르게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16회라는 제약이 있다 보니 모든 스토리를 다 풀어내기에 시간적으로 부족하지 않았을까, 만약 조금 더 횟수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밀도 있고 기대감을 충족시킬 만한 이야기 전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부분은 아쉽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성하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절제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세월이 흐르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다 보니까 점점 더 넓은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너무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았구나 싶었다. 결국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체를 인정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드라마에서 장세준도 최유진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된 셈이었다.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양심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면 비극이 초래하지 않을 텐데 자꾸 욕심내고 감추다 보니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성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 된다”고 덧붙였다.
차분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는 조성하는 마치 드라마 속 청춘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박하고 살기 힘든 요즘 시대의 청춘들에게 형식적인 위로가 아닌 실제 나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지혜를 전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 마음 편한 세상을 꿈꾸게 만들었다.
“요즘 사회는 충분히 좋은 자양분이 있기 때문에 더 큰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기보다 응원해주고 언젠가 같이 만날 시점에 서로 박수쳐주기를 기대한다면 더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티브이데일리 김예나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안성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