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의 ‘산행 중 음주’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5일 방송된 ‘1박2일’에 게스트로 합류한 다비치 강민경은 멤버들과 함께 강원도 함백산을 찾았다. 산행 도중 강민경의 가방에서 막걸리 한 병이 나왔고, 이를 발견한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종이컵에 따라 조금씩 나눠 마셨다. 그러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음주산행을 방지하는 캠페인을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조장하는 듯한 인상이었다’는 반대의견과 ‘한 잔 정도야 어떻냐’는 관용론이 부딪치고 있는 것.
논란이 일자 ‘1박2일’ 제작진 측은 언론과의 접촉에서 “강민경이 소지했던 게 전통주(막걸리)고 통상적으로 운동이나 육체노동 중 막걸리를 가볍게 나눠 마시는 일은 정서상 납득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출연진이나 제작진 입장에서 고의적으로 음주산행을 했거나 대본상 연출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녹화 중 우연히 막걸리를 접하고 시음한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지적을 받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또 “편집하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크게 문제가 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대로 내보냈다”면서 “그러나 음주산행을 금하는 관련 규제에 대해 좀 더 검토해봐야 하겠다”고 덧붙였다.
과연 ‘정서’와 ‘시음’이 산행 중 음주를 정당화하고, 일부 시청자들의 ‘과잉반응’에 일갈할 수 있을까?
먼저 ‘전통’이다. 술은 ‘신이 내린 음료수’라고도 하고 ‘악마가 바쁠 때 보내는 대리인’이란 표현도 있다. 그만큼 양면의 이중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건강학적 측면에서 술은 한두 잔 마시면 약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서면 독이 된다.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술은 사회의 교류와 식문화에 있어서 필수였다. 기독교에서 포도주를 ‘주님의 보혈’이라고 했다면 가장 오래된 술인 이 포도주는 만찬의 필수 음료였다. 와인과는 거리가 멀었던 곡주 위주의 우리 음식 문화가 서구화된 지금 포도주 문화가 성행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 관습에 ‘술은 어른에게 배우라’는 교훈이 있다. 이것은 술이 음식문화에 굉장히 중요하지만 술이 과해 이성을 잃을 경우 잠재된 폭력성이나 억누른 스트레스가 알코올에 의해 나쁘게 발산될 수 있으므로 적당한 음주로 식문화를 즐겁고 유익하게 만들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바꿔 말하자면 술은 범죄나 실수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제작진의 ‘전통주’란 표현 속에서는 외국 술이라면 문제가 됐겠지만 전통주이기에 용납된다는 뉘앙스가 행간에서 읽힌다. 술에 대한 무지 혹은 비뚤어진 의식이 두드러진다.
운동이나 육체노동 중 ‘시음’이 ‘정서’상 납득할 만한 일이라고 과연 지상파 방송에서 산행 중에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선 운동이나 육체노동 중 술을 마시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 ‘육체노동’이라는 게 시골의 논밭일이나 건축현장의 막노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되는데 농사일을 하던 중 새참 때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것은 정서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육체노동 중의 음주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오로지 안전사고의 위험성만 높일 따름이다.
더구나 운동 중 술을 마신다는 제작진의 주장은 당최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지 기초지식과 의식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프로선수 중에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채 경기장에 나타나는 이는 있을지언정 운동장에서 경기 도중 술을 마시는 이는 절대 없다. 이는 동네 축구동아리 모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이 운동 후 식사자리에서 술판은 벌일지 몰라도 축구장에서 뛰다가 멤버교체 된 후 술을 마신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경기장에서 담배도 못 피우는 세상이다.
물론 이날 ‘1박2일’ 멤버들이 마신 술은 실수할 분량은 아니다. 하지만 술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정서상의 문제다. 매주말 산에서의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의 빈발한 발생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주말 초저녁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음주산행은 천 개의 입술, 만 개의 혀가 있더라도 변명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주량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술이 센 사람이야 막걸리 한 병쯤 마시고 산을 타는 게 목을 축이는 수준일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알코올은 몸속의 수분을 증발시키기에 그렇지 않아도 갈증을 느낄 산행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저체온증에 관계된 것 말고는 백해무익하다.
‘1박2일’의 멤버들은 고생도 많이 하지만 전국 각지의 제철 먹거리도 먹는다. 더구나 숙소에서 1박을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맛난 향토음식과 함께 음주를 즐기는 장면을 내보낸 적이 없다. 이는 진짜 술을 안 마셔서가 아니라 그게 시청자들에게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자체판단 하에 결정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술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한국말은 ‘한잔’과 ‘한 잔’을 함께 쓰지만 속뜻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예로 들고 싶다. 똑같은 음절이지만 이 띄어쓰기 하나에 담긴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한 잔’은 말 그대로 잔 하나에 담긴 술의 적은 양을 뜻한다. 이 한 잔은 생활의 활력소고 대인관계의 윤활유다. 건강에도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퇴근 무렵 직장 동료에게 제안하는 ‘한잔’은 사전적 의미로야 ‘간단하게 마시는 술’이지만 한잔 하자고 뭉친 사람들이 진짜 반주 정도로 끝내는 법은 없다. 그래서 사회적 통념상 이 ‘한잔’은 취할 만큼 술을 마시자는 의미다.
‘1박2일’ 멤버들이 마신 술의 양이나 의미는 누구에게는 ‘한 잔’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그 이미지나 여파는 ‘한잔’이었다. 그래서 논란이 되는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하영민 칼럼 news@tvdaily.co.kr / 사진=‘1박2일’화면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