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데일리 박진영 기자] 박상연 작가의 소설 ‘DMZ’(1997)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로, 2000년 개봉된 이병헌 이영애 송강호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유명하다.
소설의 배경과 주제, 영화의 휴머니즘적 정서를 적절하게 섞어 뮤지컬만의 매력으로 재탄생된 ‘JSA’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분단’과 ‘형제애’라는 소재를 아프지만 따뜻하게 풀어낸다.
2013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 사업(구 창작팩토리) 뮤지컬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이기도 한 ‘JSA’는 지난 7월 독해 공연을 통해 탄탄한 스토리와 높은 몰입도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또 지난 12월 대학로 뮤지컬센터 공간피꼴로에서 진행된 14회의 쇼케이스 공연에서는 소설의 배경과 주제, 영화의 휴머니즘적 정서를 적절하게 섞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여 만에 중극장 동숭홀로 옮겨 이틀간의 프리뷰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에 앞서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던 중립국 수사관 베르사미 역의 임현수를 동숭홀 인근에서 만났다. 임현수는 쇼케이스 공연에서도 베르사미 역을 안정적으로 연기해 호평 받은 바 있다. 그는 지난 번 공연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부담되는 것이 있진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습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하고는 싱긋 웃음 지었다.
“이전 공연보다 더 잘 나올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부담은 없습니다. 지난번에는 서로 조금씩 부족하더라도 배우와 스태프 사이에 믿음이 있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응이 괜찮았던 이유가 이 믿음이제대로 전달이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원작도 좋지만 팀원들끼리의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팀워크라고 하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말이죠. 그 좋았던 호흡과 믿음이 증명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믿음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세세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메워 가고 있어요. 물론 완벽한 공연은 없기 때문에 빈 곳도 있겠지만 지난 공연보다는 단단해질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사실 임현수뿐만 아니라 김수혁 역의 정상윤은 지난 달 16일까지 이 공연장에서 뮤지컬 ‘풍월주’ 공연을 했다. 3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섰던 무대. 특히나 임현수는 재작년 ‘인당수 사랑가’ 이후 벌써 세 번이나 동숭홀에서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동숭 귀신이 돼라. 동숭 전속 배우 해라”는 농담을 듣기도 한다고.
“어차피 일주일 뒤에 다시 이 공연장으로 들어와야 하니까 운동기구 같은 물품들을 그대로 놔뒀어요. 어쩌다 보니 ‘인당수 사랑가’부터 ‘JSA’까지 세 번째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 공연장보다 친근한 것 같아요. 관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연달아 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하기는 해도 무대도 다 바뀌고, 저 또한 다른 역할로 변신을 해야 하니까 어색함은 없어요.”
다른 배우들도 그렇겠지만 임현수는 특히 ‘JSA’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일주일간의 쇼케이스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풍월주’ 스케줄까지 변경하는 열의를 보인 바 있다. 이를 거론하자 임현수는 쑥스럽다는 듯 웃더니 “저는 작품을 할 때 가장 먼저 사람을 생각합니다. 일종의 의리 같은 건데, 지금까지 저는 한번도 콜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다 오디션에 지원을 해서 작품을 했었어요. 그런데 ‘JSA’는 첫 번째로 제의를 먼저 받았던 작품이에요”라고 대답했다.
“‘JSA’는 ‘인당수 사랑가’ 인연으로 하게 된 작품이에요. 제가 ‘인당수 사랑가’를 할 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았어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는데 못했기 때문에 이 팀에 해를 준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제게 ‘JSA’를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주셨어요. 저를 믿어주신 거니까 고마웠죠. 남자는 자신을 믿어주는 이에게 충성을 다한다고들 하는데 저 또한 돈이나 횟수 생각할 것 없이 대본도 보기 전에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뒤에 대본과 캐릭터를 봤는데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해졌죠. 그래서 그 때도 지금도 참 행복해요. 그리고 ‘풍월주’가 굉장히 우울하고 진이 빠지는 공연이에요. 엔딩에서 모든 것이 해소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끝까지 가지고 가다보니 지칠 때가 많은데 ‘JSA’ 연습과 공연을 하면서 힘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풍월주’도 도움이 많이 됐었죠.”
본 공연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보다는 ‘일주일만 하더라도 충분히 좋다’는 생각으로 ‘JSA’에 참여했다던 임현수는 “첫 공연 후에 정말 놀랐어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2시간 정도 재미있는 공연 봤네’ 이 정도만 되더라도 성공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공연 후에 커튼콜을 나갔는데 관객들이 전부 울고 계셨어요. 제가 더 놀랐고 정말 좋았어요. 일주일 동안 오히려 제가 힐링을 받은 거죠”라고 기뻤던 마음을 전했다.
이번 공연은 지난 쇼케이스와는 달리 인터미션이 생겼고, 극장 크기의 변화로 인해 음악과 동선 수정 작업이 이뤄졌다. 2막 도입부에 1막의 내용을 재확인시켜주는 장면도 생겼다. 그리고 캐릭터가 조금 더 섬세해져 저마다 뿜어내는 에너지가 강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임현수가 연기하는 베르사미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거든요. 베르사미는 관찰자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극 자체가 달라진다고 봐요. 지난 공연에서 제일 염두에 뒀던 것이 극 안에 얼마나 녹아드느냐였고, 그래서 일부러 부드러운 쪽으로 선택을 했었어요. 너무 각이 지면 극 안에서 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드럽다고 해서 베르사미의 과거 아픔을 보여주지 않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겉으로는 부드럽되 안으로는 냉한 인물인거죠. 그렇게 해서 얻은 건 그 안에서 잘 녹아들었다는 것이고, 반면 아쉬운 건 베르사미 캐릭터가 약간 애매해져서 밋밋해졌죠. 그래서 이번에는 강한 캐릭터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암울했던 유년기를 보냈고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군인을 선택한 냉철한 캐릭터로 사건을 관찰하고, 또 사건도 그렇게 끌어내는 인물로 표현하고 있어요. 지난번이 그냥 들어주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빨리 말하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임현수는 “아버지와 현재 군인들이 처한 상황이 똑같다는 것을 느끼고 그걸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요. 마지막에 내레이션을 하기는 하지만 약한 느낌이에요. 지난 공연에서는 이랬다는 정보 전달에서 끝났다면 ‘저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겁니다’라는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게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라고 자신이 연기적으로 더욱 신경 쓰고 고민하는 부분을 털어놨다.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뮤지컬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던 그였다. 그러다 보니 대극장 공연에 많이 출연하고 선이 굵은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하지만 이제는 연기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나 ‘풍월주’를 지나 ‘JSA’를 통해 연기적인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됐다고.
“저는 배우로서 무대에 서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저 무대 작업의 한 일원으로 어우러져 살아가기를 소망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래서 연기에 대한 욕심을 더 키우고 있어요. 잘하고 싶고 그로 인해 잘 만들어진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임현수는 인터뷰 내내 ‘JSA’ 멤버들이 주는 에너지가 정말 좋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작품이 만들어낸다는 것. 물론 투정 부릴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작품이 좋기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열심히 하자’는 좋은 기운으로 파이팅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JSA’에는 여자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군복 입은 남자들로 가득했던 연습실. 장단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임현수는 “말이나 행동 모두 가릴 것이 없죠. 정말 군대 같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나이대로 말하자면 저는 군대에서 말년병장 밑에 일 많이 하는 병장 정도거든요. 그래서 싫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죠. 남자들끼리 있으니 편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툭툭 던지는 말이 있는데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애들은 너무나 잘 따라주죠. 앙상블 중에는 데뷔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 친구들이 밝은 에너지를 줘요.”
“제가 뮤지컬을 하는 이유는 꿈과 사랑과 희망과 정의를 위해서”라고 늘 얘기하는 임현수의 가슴 속에 오롯이 자리 잡아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는 작품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다. 물론 지금 당장 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것보다는 세상을 더 많이 살아보고 달관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돈키호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꼭 한 번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꿈’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꼭 돈키호테가 아닐지라도 ‘영웅’의 안중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두 도시 이야기’의 시드니 칼튼처럼 숭고한 정신으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이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어쩌다 보니 시대극을 많이 한 편인데 저는 일상적인 공연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나 ‘빨래’, ‘당신만이’ 같은 작품을 정말 하고 싶은데 아직 그런 기회가 없었어요. 어색한 부분도 있고 해서 못했는데 점점 그 쪽으로 넓혀가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JSA’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그러자 임현수는 다소 진지한 어투로 “막연하게 통일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공연을 하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라며 “남북이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이 세대가 끝이 나고 나면 우리가 과연 얼마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까 싶더라고요. 남과 북이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는 세대가 끊어지게 되면 서로 다른 세상을 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어요”라고 자신이 이번 공연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을 털어놨다.
“아직 ‘JSA’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남북문제를 접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겠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까요. 물론 통일을 하고 안 하고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우리 안에 통하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전에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JSA’ 안에서는 ‘남북은 하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요. 오히려 조건반사 같은 얘기를 더 많이 하죠.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오경필이 담배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건 다 똑같은 마음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닌 우리 얘기니깐요. 이걸 공연을 통해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임현수를 비롯해 이정열, 정상윤, 오종혁, 강정우, 이석준, 최명경, 임철수, 이기섭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는 4월 27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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